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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D: 23d2e4 -
| 심심할 때 읽자

#2, ID: 23d2e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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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3, ID: 444ca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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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차 --------------------- 정지용


노주인의 장벽에
무시로 인동 삼긴 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여 붉고,

구석에 그늘 지여
무가 순돋아 파릇 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소리에 잠착 하다.

산중에 책력도 없이
삼동이 하이얗다.


#4, ID: 444ca7 -
| * 인동은 어느 약재의 이름으로 '겨울을 참고 견디다' 라는 뜻이 담겨있다.


#5, ID: 23d2e4 -
|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6, ID: 444ca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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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꿈꾼 밤 ------------- 김소월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들리는 듯, 마는 듯,
발자국 소리.
스러져 가는 발자국 소리.

아무리 혼자 누워 몸을 뒤져도
잃어 버린 잠은 다시 안 와라.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7, ID: 444ca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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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시 ---------- 백석 ------


별 많은 밤
하늬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짖는다



#8, ID: 444ca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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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밤 -------------백석-----

옛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 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


#9, ID: 444ca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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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루밤 --------백석-------


불을 끈 방안에 횟대의 하이얀 옷이 멀리 추울 것같이

개 방위로 말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문을 연다 머루 빛 밤하늘에
송이버섯의 내음새가 났다


#10, ID: 444ca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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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에서 --------- 윤동주----


달밤의 거리
광풍이 휘날리는
북국의 거리
도시의 진주
전등 밑을 헤엄치는
조그만 인어 나,
달과 전등에 비쳐
한 몸에 둘셋의 그림자,
커졌다 작아졌다.

괴롬의 거리
회색빛의 밤거리를
걷고 있는 이 마음
선풍이 일고 있네

외로우면서도
한 갈피 두 갈피
피어나는 마음의 그림자,
푸른 공상이
높아졌다 낮아졌다.


#11, ID: 444ca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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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토의 시 ------구상------


오호, 여기 줄 지어 누워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인공산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을 맺혔것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12, ID: 444ca7 -
| * 초토의 시는 15편의 연작 시로 이것은 초토의 시 8이다.


#13, ID: 444ca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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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공 -------윤동주--------


그 여름날
열정의 포플러는
오려는 창공의 푸른 젖가슴을
어루만지려
팔을 펼쳐 흔들거렸다.
끓는 태양 그늘 좁다란 지점에서
천막 같은 하늘 밑에서
떠들던, 소나기
그리고 번개를,
춤추던 구름은 이끌고
남방으로 도망하고,
높다랗게 창공은 한 폭으로
가지 위에 퍼지고
둥근 달과 기러기를 불러 왔다.

푸르른 어린 마음이 이상에 타고,
그의 동경의 날 가을에
조락의 눈물을 비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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