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가 살아있는 상태를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선 생명체란 무엇인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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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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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 살아있는 것이고, 무엇이 죽은 것인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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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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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어떤 것이 살아있고, 어떤 것이 죽어있다고 정의하여 설명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두 가지가 분명하게 구별될 수 있다면, 어떻게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할 수 있는가? 즉, 살아있는 어떤 것이 어떻게 죽은 어떤 것이 될 수 있는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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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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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재미있게도, 어떤 것이 죽은 것이라면,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 될 수 없다. 즉, 앞서 말한 그러한 상태의 변화는 일방향적이고, 불가역적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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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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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히 어떤 물체의 '에너지의 고갈'을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설명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떨어져서 정지한 물체는 살아있다가 죽은 것이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말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 안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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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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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살아있는 것은 모두 움직인다. 그러한 점에서, 살아있는 것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삶은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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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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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철학자들 중 일부는 운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운동은 착각일 뿐이다. 모든 것은 있고, 없을 수 없다. 있는 것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공간의 이동을 반드시 수반한다. 이동은 있는 것이 있던 공간에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없는 것은 없으므로, 운동도 없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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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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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토텔레스는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의 위와 같은 주장에 대해 '시간'으로 응수한다. 운동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다. 공간의 이동과 함께 시간도 이동한다. 그 공간으로 분할되는 '지금 그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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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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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믿을 수 있다면, 운동은 존재한다. 운동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분할되지 않는 시간이다. 운동이 존재하므로 '다(多)'도 존재한다. 우리는 화살이 날아가는 세상에 살고 있고, 모든 게 다양하게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의 상식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맞다고 대답하고 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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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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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은 운동이고, 운동이란, 단순히 공간에 의해 분할되는 '지금'이 아닌, 시간이다. 따라서 생명은 시간과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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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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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이 운동과 관련있다면, 생명의 운동을, 제논처럼 죽 잘라보자.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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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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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살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운동을 지점으로 나누면 생명은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생명의 운동을 죽 늘여서 보면 그것은 매 순간의 죽음에서 도약하는 과정으로서의 시간이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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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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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은 모르지만, 그렇다면 생명은 죽음을 벗어나는 운동으로서 시간이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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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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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과 죽음의 관점에서 어떤 것을 보자. 죽음의 관점에서, 그 어떤 것의 생명은 우연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생명의 관점에서 죽음은 필연적이고 절대적이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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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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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생명은 죽음 안에 있는 것이고, 동시에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살아있는 어떤 것은 죽어있지 않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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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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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삶이란 죽지 않는 것이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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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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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죽음의 앞에서 고통받아야 하는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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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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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죽고 있다. 삶이란 죽음 속에 있지만 죽음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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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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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죽지 않는 것이므로, 우리는 '잘 삶'이란 '잘 죽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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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5a7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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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많은 천재들이 죽음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것을 잘 하기 위해서, 그들은 종교를 만들고,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문화를 만들었다. 죽음의 공포는 인간이 찬양하는 모든 것에 드리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