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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구
#1, ID: 8c439b -
| 사람은 살면서 배설을 해야 한다. 오줌 과 똥, 호흡, 땀 모든걸 안에서 밖으로 게워낸다.

하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가장 괴롭게 하는 감정을 게워낼 수 없는걸까.

내가 게워낼 수 있는 곳은 사이버펑키한 이 가상공간 뿐이라는 것에 대해 안도감과 씁쓸함이 밀려든다.

#2, ID: 8c439b -
| 인터넷 글조차 혹시 누가 읽을까 눈치를 보면서, 디씨인사이드나 각종 커뮤니티 처럼 이용자가 많은 사이트에서도 좀처럼 내 이야기를 뱉지 못하였다.

친구도 많지 않고, 인맥이 좁은 나인데 무얼 그토록 의식했을까라는 자조를 하지만, 그 자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글 리젠이 뜸한 xch에 글을 쓴다.


#3, ID: 8c439b -
| 사랑, 직업, 속마음 한번 시원하게 뱉어본 적이 없다. 그저 걱정만 하다 억누르고 남이 하자는대로 하면서 살다가 흐르는 시간이 수십년이다.

이렇게 사는게 인생인가 싶다.

걱정하고 조마조마하다가 모든게 떠나갈 때 혼자 뒤로 남겨지는게 그게 인생인걸까.


#4, ID: 8c439b -
| 가끔은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에게 마음 속 묵혀왔던 군내나는 일부터, 지금 내가 당신에게 느끼는 감정까지 기관총 쏘듯이 쏘아붙고 장렬히 얻어터지고 싶다.

그것 또한 배설 욕구이다.

사람은 뱉어야 사는거고, 결국 그 안에 공허함이 본질인건데 타인에 기대에 맞추어 안을 채우고 왜 다시 뒤틀리게 소화하여 뱉는 일을 반복하는걸까


그저 산 속에서 배설이나 하면서 사는게 진짜 나인걸까.


#5, ID: 8c439b -
| 내 속에 응어리져 있는 썩은 것들이 그게 나인걸까. 아무리 배설을 해도 게워낼 수 없다면, 그 노폐물들은 나인걸까.

어쩌면, 외부의 것들을 안으로 받아들여 노폐물을 만들어낸 나 자체가 노폐물인걸까.

스스로가 정말 썩었다라는 생각을 하며, 식탁 위엔 돈 아끼기 위한 도수 높은 옛날 소주와 짜파게티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난 왜이렇게 썩은 것일까

어디서부터 썩은 것일까.

내 씨앗이 썩은걸까?

아니면 내가 주어진 환경이 썩은걸까?


#6, ID: 8c439b -
| 문득 최인훈 광장의 결말이 그려진다.

중립국을 외치다가 그저 바닷 속으로 사라져간 그 사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립국이 없다는걸 알기에 깊은 바다 속으로 자신의 몸을 던진게 아닐까?

아... 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자신조차도 없다. 가난한 부모를 봉양하고 싶지 않지만, 또한 그저 눈치가 보여서 오늘도 억지로 송금을 한다. 학습된 피해의식일까.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 무언가의 경지로 가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이 머리를 깎나보다.


#7, ID: 8c439b -
| 나를 둘러싼 환경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익명에 기대어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대들도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커피 한잔하면서 평범한 사람마냥 이야기를 하다가도 저 깊은 대장 속에서부터 구린내가 올라온다. 이 사람은 나처럼 뭐가 구린게 있는걸까라는 썩은내가 내 스스로에게 진동한다.

결국 이 사람도 나처럼 어딘가가 구리고 하자 있는 사람이겠지라는 생각에 적당히 얼버무리고 자리를 뜬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급히 지우고 차단을 한다.

비겁한 새끼. 또 도망친다.

정작 배설하고 싶은건 배설도 못한 채 그저 도망친다.


#8, ID: 8c439b -
| 아 결국 구린건 나였구나.

내가 배설물이었는데, 나를 받아줄 배설구는 도대체 어디있는걸까.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당히 썩다가 흐르는 빗물에 흐드러지게 건더기도 없이 사라져야하는게 내 본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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